본문 바로가기

이글루스

녹색병원 희망나누기

검색페이지 이동

사이드 메뉴

이글루스 블로그 정보

원진녹색병원 설립의 의의

앱으로 보기

본문 폰트 사이즈 조절

이글루스 블로그 컨텐츠

산재 노동자의 피와 땀으로 지은 병원
- 원진녹색병원 설립의 의의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 김 록 호



지난 6월 5일 경기도 구리시에는 우리나라에서 유례가 없는 병원이 개원하였다. 아니 어쩌면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병원일지도 모른다. 직업병을 인정, 보상 받고 안전한 노동권을 확보하기 위해 10여년간 투쟁해 온 원진의 직업병 노동자들이 피와 땀으로 쟁취한 원진녹색병원이 문을 연 것이다.

원진레이온 공장은 1960년대 중반 일본에서 중고 기계 설비를 들여와 흥한 화학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가동되기 시작했다. 펄프를 이황화탄소, 황화수소, 가성소다 등과 작용시켜 비스코스레이온을 만드는 섬유공장이 당시만 해도 첨단의 기술이라고 인식되어 공장가동식에는 박정희 대통령까지 와서 격려해주었다 한다. 공장 경영이 가져다 줄 경제적 이익에만 눈이 어두워 있던 시절이라 이황화탄소라는 독가스를 마시며 일하는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할 안전 설비의 설치는 생각할 수도 없었다. 가동 직후부터 계속 이황화탄소 중독 환자가 발생했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6-70년대에 원진레이온에 다니다가 고혈압, 뇌출혈, 뇌졸중, 중풍 등으로 돌아가신 분들은 어쩌면 이황화탄소중독의 증상 악화로 돌아가셨는지도 모른다.

1981년 8월 방사 3과에 근무하던 홍원표 씨가 수 차례 가스 중독을 경험하다가 전신마비로 국립의료원에 입원하여 국립의료원에서 가스 중독이라고 진단 받았을 때까지도 사람들은 이 공장에서 심각한 문제가 일어나고 있음을, 그 중대한 의미를 눈치채지 못하였다. 병원에서 진단명을 '이황화탄소 중독'이라고 하지 않고 '아황산가스 중독'이라고 한데서 알 수 있듯이 정확한 직업병 진단조차 아니었다. 홍원표 씨는 1980년 9월에 입사 한 뒤 10월, 1981년 1월, 3월 가스 중독으로 입원치료를 받았다 하니 그 당시 작업 조건이 얼마나 열악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당시만 해도 전두환 군사 독재 치하였고 원진레이온 사장이 공군 소장 출신이었으므로 회사를 상대로 직업병인정투쟁을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반신마비, 언어장해가 남을 만큼 심한 중독이었는데도 5백만원을 받고 회사와 합의를 하고 말았고 나중에 변호사가 도와주려 하였으나 동료 노동자들과 이웃 주민들이 회사측의 압력 때문에 법정에서 증언을 기피하여 소를 취하할 수밖에 없었다 하니 그 당시 사회 분위기가 얼마나 살벌하였는지 알 수 있다.

그러다가 1987년 1월 정근복, 서용선, 김용운, 강희수 씨 등 유독가스를 가장 많이 흡입하는 공정인 방사과에서 13-18년씩 근무하시다 의병퇴직한 분이 노동부와 청와대에 자신들의 반신불수, 언어장해 등이 직업병일지 모르니 조사해달라는 진정서를 내는 민원이 발생한다. 노동부로부터 의뢰받아 조사한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직업병 여부 확인 결과 보고서를 1987년 4월 노동부에 제출함으로써 집단적 직업병 발생의 첫 사례를 기록하게 된다. 그러나 고려대학교병원 측의 보고서는 "상기한 작업환경측정결과와 직업력조사 그리고 임상검사결과 등을 종합할 때 직업성 질환에 이환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면서도 "단, 상기 4인에 대한 임상적 추정 진단 질병들이 모두 직업성 원인에 의하여 발생한 것으로 판정지울 수는 없다"는 사족을 달았다. 또한 국내 최초로 확인된 심각한 직업병 집단 발병 사례임에도 불구하고 이 비극적 사건이 한겨레신문을 통하여 사회에 널리 알려질 때까지는 1년이 넘게 걸렸다. 당시 조사를 담당했던 교수들은 회사와 노동부에서 즉각적인 노동자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직업병 집단발병 증례를 즉시 학계에 보고하거나 사회에 알리지 않고 오랜 동안 침묵을 유지함으로써 결국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보다 정부와 기업의 입장만을 고려했던 것이 아니냐는 따가운 비판을 노동자들로부터 받게 된다.

목적의식적 원진직업병인정투쟁의 서곡은 1988년 7월 2일 15세의 문송면 군이 수은 중독으로 사망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문군 사망의 직업병 인정을 둘러싸고 시비가 일자 양길승(당시 노동과건강연구회 대표), 박석운(당시 노동인권회관 소장), 김은혜(당시 구로의원 상담실장), 김록호(당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상담부장) 등이 산재노동자연맹, 보건의료운동단체, 기타 사회단체의 참여를 광범위하게 조직하여 유족과 함께 대책위를 꾸린 뒤 국회의원들과 함께 진상조사, 여론화 및 보상투쟁을 성공적으로 전개하였다. 이 투쟁은 보건의료운동가와 노동운동가가 산재 피해자 가족과 일체가 되어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전개하는 산재추방운동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으로서 뒤이어 전개된 투쟁의 전제가 되었다.

1988년 7월 22일 한겨레신문과 동아일보에 원진레이온의 함병화, 정명섭 씨 등의 이황화탄소 중독 요양승인 소식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특히 한겨레신문에서는 구리 노동상담소의 박무영 소장의 제보를 근거로 그 동안 정당한 직업병 보상을 받기 위하여 고군분투해 오던 원진레이온 퇴직 노동자들의 눈물겨운 이야기를 심층 보도하였다. 원진직업병인정투쟁은 이 언론보도에 의하여 촉발된 셈이었다. 언론보도에 곧바로 뒤이어 문송면 장례 투쟁 때 활동했던 단체와 활동가들이 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거의 매일 구리상담소, 성수의원 등에서 모여 대책활동을 벌였고 1988년 8월 4일 박영숙(평민당 부총재), 노무현(민주당의원), 김양호(구로의원 원장) 등으로 '원진레이온 직업병발생 진상조사반'을 구성하여 원진레이온 방사과 현장을 둘러보고 진상조사결과를 발표하였다.

원진직업병인정투쟁의 조직적인 전개는 직업병 인정과 보상을 요구하는 17가구가 참여하여 1988년 8월 18일 '원진레이온 직업병 피해자 및 가족 협의회(원가협)'를 결성하면서부터이다. 원가협의 활발한 활동은 직업병 피해 당사자와 그 가족들이 보건의료전문가, 사회운동가의 지원과 자문을 받으면서 앞장서서 싸우는 과학적 산재추방운동의 모범이 되었다. 원가협과 회사측과의 협상이 자꾸 결렬되자 원가협 회원들은 1988년 9월 9일 평민당 구리지구당 사무실을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가 올림픽 성화 봉송로를 점거할 것을 결의하는 등 비장한 투쟁을 전개한다. 드디어 9월 14일에 박영숙 의원 사무실에서 박석운 소장이 기안한 합의서에 서명하게 되는데 이로서 제 1차 원진직업병인정투쟁이 승리로 마무리 지어진다.

나는 1988년 7월 중순 경 한 집회에서 원진레이온노동자들 사이에 이황화탄소중독 환자들이 있다는 소식을 구리노동상담소 박무영 소장으로부터 처음 들었다. 당시 사당의원 원장이면서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 박사과정에 다니던 나는 이황화탄소중독이 심혈관계 질환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백남원 교수의 수업시간에 들어 알고 있었는데 이황화탄소중독은 직업병 치고는 좀 유별난 복잡한 병인일반 질환과 감별하기가 쉽지 않은 병이다. 구리노동상담소에 가서 증상을 호소하는 분들을 진료해보니 이미 1930년대 미국의 의학 학술지에 보고된 증례들과 비슷하였다. 외국에서는 수십년전에 알려져 지금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 병이 우리나라에 뒤늦게 등장한 것이었다.

당시 중학생이던 강희수 씨의 딸이 '노동부장관 아저씨, 우리 아버지의 건강을 되찾아 주세요' 하고 호소하는, 노동부장관 앞으로 보내는 편지를 써서 한 집회에서 낭독하였는데 모두의 콧등을 시큰하게 만들었다. 직업병 환자의 가족들이 겪는 물질적, 정신적 고통을 가까이 보면서 나는 직업병은 단지 환자 한 사람 뿐만 아니라 가족 전체를 아프게 하는 병이라고 배우게 되었고 환자의 치료와 재활은 반드시 가족 전체의 치유과정과 병행되어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 또한 좌절하고 절망하던 직업병환자와 가족들이 직업병 인정 투쟁에 참여하여 단결하여 싸우고 최종적인 승리를 쟁취함으로써 환자의 자긍심이 회복되고, 가족들이 환자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사회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가지는 것을 보고 산재추방운동은 인간해방운동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많은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이 오래 전부터 직업병으로 고생하고 있으면서도 의사들이 적절한 진단을 내리지 못하여 직업병의 치료와 보상이 지연되고 회사와 정부로부터도 괄시 당해 환자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는 것을 보며 산업의학을 공부하는 의사로서 참으로 안타까웠다. 세상에 가진 자들을 위해 일하는 의사는 많아도 못 배우고 못 가진 노동자들을 위한 의사는 이렇게 없구나 싶어 적어도 나 하나만큼은 히포크라테스의 선서처럼 환자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불문하고 오직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의사가 되어 보자고 각오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1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원진 직업병 투쟁이 세계 직업병 역사에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국제적으로 널리 아주 널리 알려진 것은 아니다. 앞으로 후진국의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쓰라린 경험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해 세계 노동자들에게 널리 알릴 필요가 있을 것이다.

첫째, 원진 직업병은 후진 독재개발 중진국에서 발생한 후진국형 직업병이라는데 그 의미를 찾아 볼 수 있다. 미국, 일본, 이태리, 핀랜드 등에서는 30-60년 대에 집중적으로 연구되어 생산공정에 예방시설을 구비함으로써 레이온 공장에서 고전적인 이황화탄소 중독의 발생이 거의 없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공장이 가동되는 20여 년간 노동자들이 거의 무방비 상태로 독가스에 노출되었고 그 결과 80-90년대에 대규모로 희생자가 발생한 것이다. 즉 선진국에서는 거의 사라진 옛날 직업병이 후진국에서는 산업화와 함께 새로 등장하여 커다란 희생을 낼 수 있다는 사례가 된 것이다.

둘째, 원진 직업병은 일본에서 들여온 공해산업에서 발생한 것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원진의 사례처럼 선진국의 공해산업이 후진국에 들어와 집단적인 비극적 직업병 문제를 만들어내는 일을 막으려면 국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원진레이온 공장이 1966년 처음 가동될 때 일본의 산업재해추방운동가들이나 산업안전보건학자들이 한국에 와서 한국 노동자들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였다면 오늘날처럼 많은 직업병 환자가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불행히도 우리는 일본이 저지른 잘못을 그대로 뒤따르고 있다. 원직 직업병 환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993년에 가동을 중단한 원진레이온의 공장 설비가 1994년 50억원에 중국으로 팔려갔다. 앞으로 중국에서 이황화탄소 중독에 걸린 노동자들이 대량으로 나온다면 거기엔 우리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한국의 원진직업병 환자들과 관련 전문가들은 중국에서 제2, 제3의 원진 사건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국제적인 노력을 하여야 할 것이다.

셋째, 원진 직업병 투쟁은 직업병의 희생자들이 주체로 조직되어 전문적 역량과 결합한다면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특히 전문가의 운동적 결합은 피해보상투쟁의 성과가 환자 개인의 복리증진으로 끝나지 않고 노동자 일반의 대의를 추구하도록 하였다.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원진녹색병원의 출범이다.

원진레이온 직업병투쟁의 역사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당시의 노동조합이 선배 노동자의 직업병 호소를 외면하였다는 것이다. 같은 부서에서 일하던 선배 노동자들이 회사와 정부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데 후배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통하여 지원투쟁을 해 주었다면 훨씬 유리한 지형에서 싸울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아쉬움은 약 2년 후 김봉환 씨 직업병 인정 투쟁의 초기 단계에서 다시 제기되는데 직업병 인정투쟁을 하던 원가협, 원노협 등과 노조가 서로 연대하여 보상 투쟁을 승리로 이끌어 내게 되면서 많이 해소되었다.

원진직업병센타는 원진 노동자와 직업병 피해자들이 보건의료전문가, 사회운동가 등과 하나가 되어 지난 10년간 줄기차게 싸워 온 투쟁의 결실이다. 원진직업병센타 건립을 위해서 구기일 원노위 위원장님, 박석운 소장님, 실무자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참 애쓰셨다. 이제 우리의 산재추방운동은 센타의 출범에 의하여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게 되었다. 원진녹색병원은 우리나라 산재요양 서비스를 고급스럽고 품위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림으로써 '괄시받고 천대받는 산재환자'라는 말이 영영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할 것입니다. 원진직업병연구소는 국내 최고의 인력과 시설을 갖춤으로써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산재직업병의 예방과 치료, 재활의 연구업적을 낼 것입니다. 원진복지관은 원진 직업병 환자들의 격조 있는 쉼터가 될 것입니다. 한마디로 원진직업병센타는 원진 환자들의 것이며, 우리나라 산재환자들의 것이며, 세계 노동자들의 것으로서 국보처럼 세계에 내놓을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원진녹색병원은 구리시 인창동 소재 성림스포렉스 빌딩에 자리잡고 있다. 서울에서 망우리 고개를 넘어 교문사거리에서 좌회전한 뒤, 약 500미터정도가면 왼편으로 병원 건물이 보인다. 건물의 지하층과 1,2,6 층을 사용하고 있다. 진료과목으로는 내과, 일반외과, 정형외과, 소아과, 산업의학과, 가정의학과, 방사선과, 재활의학과, 치과, 한방과 등이며, 검사시설로는 전신 컴퓨터 촬영 등 웬만한 대형 종합병원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아담한 병실에는 50명의 환자를 수용할 수 있다. 병원의 진료능력에 비해 병실이 적은 이유는 세를 내어 쓰는 건물에 여유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이 병원의 자랑거리 중의 하나가 6층에 자리잡은 '노동환경건강연구소'이다. 여기에는 박사 3명(산업위생학, 산업사회학, 면역독성학), 석사 4명(산업위생학, 환경분석학)의 연구원이 국내 최고 수준의 실험분석 장비를 갖추고 작업장과 일반 환경의 유해요인으로 인한 건강장애에 관하여 연구하고 있다. 수년 이내에 이 연구소는 국제적으로 역량을 인정받는 일류 연구소로 자리잡을 것이다. 개원한지 2개월이 막 지난 8월 현재 이미 원진녹색병원은 원진의 직업병 환자들이 믿고 이용할 수 있는 든든한 보금자리이자 진료, 재활 센타로서의 기능을 잘 수행하고 있으며 지역사회 주민들 사이에 원진녹색병원에 가면 젊고 유능한 의료진의 친절하고 상냥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순조로운 출발을 보이고 있다.

개원 2개월만에 매일 150-250명의 외래환자와 35명 내외의 입원환자를 돌보고 있는 원진녹색병원은 경영의 측면에서 아직은 적자를 내고 있지만 지역사회에서 병원의 평판이 확고해지면 개원 후 6개월 이내에 흑자 운영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내과는 전 원진의원 원장으로서 원진환자들의 주치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온 남상민 과장, 일반외과는 현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로서 노숙자 진료와 북한어린이돕기 운동 등에 앞장 서 온 정일룡 과장, 산업의학과는 전 구로의원 원장으로서 원진환자들 뿐만 아니라 구로동 지역 노동자의 직업병 진료에 헌신했던 임상혁 과장 등이 포진해 있어 이 병원의 의료진은 의료기술의 수준에서 뿐만 아니라 환자에 대한 헌신성, 봉사정신의 측면에서도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원진 직업병 환자의 수는 지난 10년간 계속 늘었다. 회원 17명이었던 원진직업병가족협의회 회원이 이제는 800명에 달하는 원진직업병노동자위원회로 발전했다. 그러나 일선 사업장에서의 노동자 현실은 산업재해에 관한 한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산재의 발생 건수는 줄었다고 하지만 매년 2,500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고 있는 현실은 10년 전보다 오히려 나빠진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10 년전의 원진 직업병 환자들처럼 직업병 인정을 받지 못하고 억울한 한숨을 쉬고 눈물 짓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전국적으로 산업재해로 고통받고 신음하는 사람들이 매일 새로 수백명씩 발생하고 있는 한 산재추방운동의 필요성은 10년전에 비해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최근 요통과 하반신 마비 등으로 산재요양을 받던 젊은이가 비관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원진레이온 직업병 노동자들의 선도적인 투쟁이 원진녹색병원의 성공적 개원으로 열매를 이루고 있는 이 순간에도 아직 직업병, 산재로 고통 받고 설움 받는 노동형제들이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아직은 작은 승리에 만족할 수 없다. 이 땅에는 제2, 제3의 원진레이온과 같은 사업장들이 있고 원진 직업병노동자들과 같은 산재환자들이 있다. 원진녹색병원은 이 마른 들판에 작은 불씨를 지핀 것이다. 병마에 시달리고 고통받고 있는 전국의 수만명의 산재환자들이 산업폐기물과 같이 버려지는 불구자로서 취급되고 있다. 이들이 당당한 경제 건설의 주역으로 대접받고 그에 합당한 건강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원진녹생병원은 그 역사적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포스트 공유하기

썸네일
녹색병원님의 글 구독하기
덧글 0 관련글(트랙백) 0
신고
맨 위로
앱으로 보기 배너 닫기

공유하기

주소복사

아래의 URL을 길게 누르면 복사할수있습니다.

http://greennanum.egloos.com/m/3299531
닫기

팝업

모바일기기에서만 이용이 가능합니다.
운영체제가 안드로이드, ios인
모바일 기기에서 이용해주세요.

덧글 삭제

정말 삭제하시겠습니까?

비밀번호 확인

게시글 신고하기

밸리 운영정책에 맞지 않는 글은 고객센터로
보내주세요.

신고사유


신고사유와 맞지 않을 경우 처리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 위반/명예훼손 등은 고객센터를 통해 권리침해
신고해주세요.
고객센터 바로가기